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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언제부터 왕궁에서 굿을 할 수 없었을까? / 왜 조선시대는 무당을 궁내에서 굿을 할 수 없었을까? / 언제부터 무당이 배척됐나? / 왜 왕은 무당을 믿지 않는가 / 왜 조선시대 궁에서 굿을 할 수 없었을까? / 무속신앙 의 배척 /
무당은 언제부터 왕궁에서 배척됐을까?
-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
- 무속이 국가와 사회 전체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던 시기
- 불교가 수용되면서 무속의 지위는 위협을 받게 된다.
- 신라의 반도통일을 전후하여 지배적 종교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 7세기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 중기인 16세기까지
- 무속이 국가나 전체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적 기능을 상실했다.
- 국왕에게서는 사제자적 성격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무격들이 국가조직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의례에서도 배제
- 16세기 사림파의 집권 이후로
- 무당들이 지역사회 차원에서의 기능마저 상실하고 주로 개인의 길흉화복 문제에만 관련하는 시기.
- 사림파란 16세기에 조선왕조의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부상한 세력들인데, 이들은 향촌사회를 기반으로 성장한 세력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무속을 배척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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