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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편 군도(君道)


2절


부절(符節)을 맞추어 본다든가 계약서를 각각 나누어 보관해 둔다든가 하는 것은 단순히 믿음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맨 위에 있는 군주가 권모술수를 좋아할 때는 신하 및 모든 하급 관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기성이 있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 부절과 계약서를 미끼로 하여 남을 사기하기를 일삼게 된다.


또 여러 가지 제비를 뽑아 일을 결정하는 때는 오직 공평을 기약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맨 위에 자리한 군주가 자기 멋대로 부정을 즐겨 한다면 그 밑의 신하 및 모든 하급 관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 제비를 미끼로 갖은 편벽된 짓을 다하게 된다.


또 저울대와 정루추로 물건을 달 때는 오직 공평을 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 자리한 군주가 남을 넘어뜨리기를 좋아한다면 그 밑의 신하 및 모든 하급관리들까지 그 저울을 미끼로 하여 험악한 짓을 일삼게 된다. 


또 말과 되를 만들고 말 밀대질을 하게 한 것은 그 분량을 공평하게 하자는 것이지만 위에 자리하고 있는 군주가 탐욕을 부리면 신하 및 하급관리들까지 그 틈을 타서 많이 받고 적게 주는 등 백성의 양곡을 절제 없이 착취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기(器機)와 기술은 정치에서의 말단의 일이요 군자가 정치의 근원인 것이다. 관리는 그 말단의 기술을 지키지만 군자는 그 정치의 근원을 기르는 것이다. 근원이 맑으면 흐르는 물이 맑고, 근원이 흐리면 그 말단의 흐름이 흐린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예의를 좋아하고, 어진 이를 높이고, 유능한 자를 쓰고, 탐욕을 버리면 아래에서도 또한 사양을 다하고 충신(忠信)을 일으켜서 신자(臣者)의 도리를 삼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록 끝의 서민들이라도 부절(符節)을 맞추어 보거나 계약서를 대조해 보지 아니하여도 신용이 있을 것이요, 제비를 뽑고 산대를 던져 보지 아니하여도 공평해질 것이요, 저울에 달아보지 아니하여도 공평해질 것이요, 말과 되를 밀대질하지 아니하여도 고를 것이다.


그러므로 상을 주지 아니하여도 백성은 힘쓰며, 벌을 주지 아니하여도 백성은 복종하며, 법관이 수고하지 아니하여도 일은 다스려지며, 정령(政令)이 번거롭지 아니하여도 풍속이 아름다워지며, 백성은 위에서 정한 법을 따르고, 위의 뜻을 받들고, 위의 일을 근면하여, 모든 것이 안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금을 내는 데도 출비(出費)의 고통이 없고, 일을 하는 데도 고생스럽지 않고, 적과 싸워도 생사를 잊고, 성곽은 중수(重修)하지 아니하여도 견고하고, 무기는 닦지 아니하여도 날카롭고, 적국은 정벌하지 아니하여도 굴복하고, 사해(四海)의 백성들은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통일될 것이다. 무릇 이런 것을 지평(至平), 곧 최상의 정치라고 하는 것이다.


"시경"에,

"덕망 높은 임금님 찾아, 서(徐)나라 저 멀리서도 다투어 오네."

라는 노래야말로 바로 이러한 일을 두고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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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리에게는 어질다는 것의 가치가 퇴색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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